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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여행인듯 시험인듯 사랑인듯 아쉬움인듯

아빠:오늘 시험보러 가는 데가 어디라구?

아들: ㄱㅊ 대요.

아빠: 거기 별로 아니야? 대충 보고와 붙지 않게

아들: 그래도 저는 붙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그 대학 정시로는 만만치 않아요.

      요즘 점점 좋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더 좋아질거예요.


어제 아침 저희 집 풍경이었어요.

연대시험도 아니건만 굳이 수능전에 본고사 형태의 적성고사를 보는 대학

얼마나 광고와 홍보를 많이 하는지 보내지 않아도 어느덧 익숙해진 대학

수시접수때 가장 많이 고민하게 했던 대학....

꽃길님 일하시는 곳 근처의 대학에 다녀왔어요.


지가 다 알아서 한다고 서울대 면접 말고는 같이 가본적이 없던 큰놈과

달리 친구들과 같이 안가고 엄마랑 가고 싶다는 둘째를 따라

성남에 다녀왔어요. 버스타고 전철타고....

제가 운전은 한운전하는데 길치이자 방향치라 낯선 곳은 잘 못가요.

네비도 저는 적응이 잘 안되서 특히 도시속으로 시간맞춰가는 시험은

두려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버스에서 둘째는 제 손을 꼭 잡고 어깨동무도 해주고

눈도 맞춰주고 두런두런 얘기도 귓속말처럼 작게 해주고

마치 어딘가 좋은 곳으로 여행가는 것 처럼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해주었어요. 수능 끝나고 꼭 이렇게 어디든 가보고 싶다...

늘 운전하는 옆좌석에 앉아서 얼굴 한번 제대로 마주보지 못했는데

시험보러 가면서 이런 행복을 느낄수도 있다니 참 희한한 일입니다만...


지하철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학교 입구도 편해서 좋았고

학교 직원인지 도우미인지 지하철 안까지 들어와 안내해주어

아주 편하게 도착..이미 여기 저기 계단에 앉아 있는 학생들과 

엄마 아빠들..수험생 3종 셋트 사이에 저희도 한무리가 되어

앉아 있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놀란 둘째는 그제서야 실감이

나는지 연신 떨린다고 하면서 집에서는 긴장감이 너무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더니만 막상 시험장에 오니 아이는 아이인가 봅니다.


시험 준비라고는 고작 몇회의 모의고사 문제와 기출문제를

설렁설렁 풀어본 것 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시험본다고 온 거 자체가 참말로 어이없기도 합니다.

어찌 된 건지 아이가 정리해놓은 노트는 하나도 없고

요즘 제가 인강들으면서 적어놓은(별짓 다하죠?)

국어 노트랑 미처 다 못푼 기출문제들 들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혼자 파파에 들어가 출첵방 글에서

꽃길님 글을 읽었지요. 저 여기 왔어요....


학부모 휴게실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었네요..그 와중에...

닥터스 라는 드라마 배경이 되었던 건물 뒤 정원도 

산책하고 학교 구경 겸 산책을 했어요.

박효신의 숨을 비롯해 신곡도 듣고요...


시험이 총 4차로 진행되어서 저희 아이 타임 전 아이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긴장된 모습..뭐라뭐라 시험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학생들

불안하고 초조하게 물어보시는 부모님들의 간절한 얼굴

아마도 다른 분들께는 저도 그리 보였겠지요.

소풍처럼 샌드위치와 과일 커피 이런 것도 싸가지고 왔지만

시험전 아이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들어갔어요...


고작 1시간으로 아이의 운명이 정해진다니 신기하고

뭔가 아쉽고 허전하고 그랬지요..

걷고 또 걸어도 한시간은 참으로 길게 흘러가고...

시험장 근처까지 가서 서성거렸어요.

그러다가 문득 아이들 시험보는 장소의 감독관과 눈이

딱 마주쳤어요...그리 낮은 층에서도 시험을 보는지 몰라

깜짝 놀라 얼른 발걸음을 옮겼지요..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계신 

한 어머니를 봤어요..갑자기 울컥하게 되는 마음....

자식이 뭔지....참 자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해가 지고 이윽고 둘째가 여러 아이들 사이에서

나타났어요...아이가 먼저 저를 찾아냈어요...

불과 몇시간전에 헤어진 아이모습이 잠깐이지만

몇년은 더 늙어보이는 기이한 느낌....

묻지도 못하고 아이의 첫 멘트를 기다렸지요.

1. 수능 안봐도 되겠어...(수능전 발표인 대학)

2.남자는 역시 정시지...(수능을 아주 잘 봐야 대학간다)


일단 두 문제를 잘못 옮겨 적었답니다.

60분 동안 50문제를 풀어야하는 시험인데

답안지도 교체해주지 않고 수정할 수도 없는 시험이래요.

한번 잘못 옮겨적고 아! 하는 사이 벌써 두번째 틀리게

옮겨 적었답니다...

엄마: ( 제 정신이야..시험 한 두번 보냐? 푼 것도 못 적으면

       어떻게 해? 무슨 생각으로 시험을 보는 거야?)

아들: 아 근데 그 두문제가 답에 확신이 없는 거여서

      잘못 옮겨적은게 답이면 좋겠어요...그럼 붙는데..

엄마: 헐

아들: 마치 6만원 내고 컴퓨터사인펜 하나 받은 느낌이예요.

엄마: (6만원어치 컴사를 사면 수능장앞에서 장사를 해도 되겠다)

      속마음- 도대체 언제나 시험을 시험처럼 한번 볼까?

      겉대사- 어쨋든 고생많았네..수능까지 한번 더 홧팅하자.


물밀듯이 밀려가 전철을 타고 전철안에서 흔들리는 저를

든든하게 꼭 잡아서 지탱시켜 주는 둘째

천안가는 버스가 매진되서 평택으로 가서 다시 전철타고

가야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불평한마디 없이

여전히 버스 안에서 손을 꼭 잡아주는 둘째...

아이의 손에 제 불안과 염려의 손을 맞잡고...

다짐해봅니다..이렇게 마주 잡은 손만 있다면

아무리 힘든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마주친다 해도

잘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그리하길 기도한다고...


평택역으로 마중나와준 남편덕분에 편하게 집으로

돌아온 둘째...내일이 중간고사라네요..헐

이 나라는 무슨 입시를 이렇게 뒤죽박죽 치루게 하는지

의미없는 중간 기말고사 2학기에는 한번으로 통합하게 해주면

안되는 것인지...수능끝나고 시험보게 조금만 배려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첫 수시 일정은 이렇게 지나갑니다.

문득 미친척하고 연대 논술 써볼걸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주위사람들이나 아들의 아이들에게

연대 지원했다가 아깝게 안된 걸로 얘기나 할 수 있게요.ㅎㅎ

(물론 최저 못 맞출 거 같아서 못썼다거나 최저 안되서

 정작 시험장에 못갔다거나 이런 얘기는 안하는 걸로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원서 한장 못쓴 아들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마음 따뜻하고 사랑을 할 줄도 아는 둘째

우리 둘째 같은 아이들 더욱더 응원합니다.

이미 살짝 상심해 있는 그 아이들에게

우리는 한번도 너희를 부끄러워해본적 없고(사실 몇번 있습니다만)

옆집 잘하는 아이/혹은 울집 다른 아이와 너를 비교해 본 적도 없다.

(그럴리가요!! 끊임없이 부럽고 분통터지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제가 저를 다독이고 속여가면서

아이에게는 언제나 긍정적인 말만 해주려 노력합니다.


너로 충분하다.

너여서 참 좋다.

너니까 더 잘될 것이다.

너와 부모 자식 인연이어서 감사하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2%아니고 20% 부족한 우리 아이

온전히 사랑해줄 이 저밖에 없을 테니까요.

파파의 수많은 부러운 아이들 많이 있지만

오늘부터는 우리 아이 더 자랑스러워하려고 

엄청 노력하려구요...


아직 그 아이 인생 5/1 밖에 지나지 않았고

이 아이가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갈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주식투자하고 원금 손실나도 그냥 푹 묻어두면

언젠가 대박이 나기도 하는 것처럼

(꼭 그러하길 바래봅니다.아님 할 수 없구요)

조금 더 많이 기다려주려합니다.

언젠가 한번은 진짜 자랑스러운 날이 있겠지요.


오늘은 세상에는 많지만 

파파마을에는 적은 것 같은

그래서 파파에 쓰기는 좀 거시기하지만

평범하고 양보?잘하는 착한 둘째같은 아이들에게

응원과 깊은 사랑을 보냅니다.

괜찮다고...괜찮아질거라고..기죽지말라고...

더 좋은일들이 꼭 생길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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