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로서는 참으로 어이없는 결말 /덕선이 남편이 택이었다니요.
김주혁이 어떻게 택이의 40대인걸까요?
아무리 담배 좀 많이 피우고 바둑으로 스트레스 받았다고 한들
택이가 어떻게 정환이스러운 김주혁으로 변했다고 하면서
우리더러 믿으라고 하는 걸까요?
물론 개인적으로 저는 김주혁배우도 광식이 동생 광태 이후로 좋아합니다.
택이의 어른 모습을 굳이 다른 배우로 할거면 택이스러운 배우를 찾았어야지요.
드라마 초반 덕선이를 보며 제가 덕선인듯 동화되었던 상황에서
정환이가 수학여행 벽 사건 이후로 덕선이를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고
버스에서 팔뚝에 힘줄 세워가면서 보호해주던 장면.
선우가 좋아하는 사람이 보라인걸 알고 혼자 막 웃던 장면
택이가 덕선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 막 굳어지던 표정의 정환
덕선을 기다리면서 집앞에서 운동화 끈 막 다시 매던 정환이
덕선이랑 같이 탄 버스에서 덕선이가 졸면서 어깨에 기대자 좋아하던 표정
덕선이가 나 소개팅 나갈까? 할때 나가지마 라고 하던 장면
덕선이랑 별밤콘서트 가던 날의 티격태격 행복해하던 모습
핑크셔츠를 공사 들어가면서 소중히 챙겨가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장난을 가정하여 친구들 앞에서 고백하던 정환이
내 신경은 온통 너였어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나 너 진짜 좋아...사랑해 라고 하던 모습
그리고 비오는 날 독서실에서 오는 덕선이에게 우산 주면서 일찍 다녀 하던 얼굴
우리가 못본 장면 모음에서 정환이가 덕선일 훔쳐보면서 웃던 장면
노을이에게 전해달라했던 분홍색 앙고라 장갑....
덕선이 때문에 행복하고 덕선이로 인해 더욱 빛나던 청춘을 보낸 정환이와 함께
같은 마음으로 덕선을 바라보고 고백할 날만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설레이고 행복하고 기대했던 덕선이와 정환이의 아름다운 연애와 결혼을 꿈꾸던
우리를 두고 ....택이라니...그저 아주 나쁜 새끼가 아니라는 이류로 택이라니...
19회때 이미 택이를 남편으로 알려준 제작진에게 마지막회에서 제가 기대한건
다만 한가지...무슨 막장드라마처럼 다시 정환이를 남편으로 해달라는게 아니라
정환이가 어느 대목에서 다시 진지하게 덕선이에게 고백이라도 멋지게 한번하고
그래서 덕선이도 정환이로 인해 설레이던 그 시절에 대한 응답이라도 한번 해주고
더 간절해보이고 더 망설임 없이 아주 중요한 대회를 기권하고(택이로서는 전부일 바둑을)
덕선이에게 와준 택이를 /덜 용감했고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정환이 대신
덕선이가 선택해주는 것으로라도 설명해주기를 바랬습니다.
덕선이가 아무리 눈치가 없고 정환이가 아무리 무뚝뚝한 척 했어도
거의 매일을 보고 거의 한집에 사는 사이에서
서로가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서 우정인듯 싶던 마음이 사랑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둘이 단 한번도 확인하지 않고 택이와 만나게 된다는 스토리에 동의할 수가 없어요.
왜 정환이는 선우를 의식하고 택이를 배려하여 자기 사랑을 표현해보지 못하는가?
왜 덕선이는 선우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그에게 설레이다가
정환이를 좋아하는 것 같이 핑크셔츠도 선물해놓고도 왜 먼저 고백을 하지 않는가?
택이를 좋아하게 된 계기나 상황이나 변화를 우리에게도 내색해줘야하지 않았을까?
보라가 마치 응팔의 주인공인듯 그녀의 결혼으로 끝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라는 선우의 고백에 응답했고 부모와 자신의 꿈을 위해 사랑을 버리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선우를 만나기 위해 1%의 가능성에도 도전했고 선우에게 고백도 합니다.
흔하지도 않은 성씨인 두 사람이 동성동본이란 설정에도 굴하지 않고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고 기다리면서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그녀의 사랑과 열정과 선택을 지지합니다.
보라와 정환은 둘째들로 서로 이쁜 딸? 노릇만 하면서 온통 배려만 하다가
결국 주인공에서도 밀려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매회 여러명의 주변 인물들이 그 회의 주인공인듯 단독스토리가 있었던데
정환이만 단독 스토리 한번 못 펼쳐보고 드라마는 끝이 나버렸습니다.
현실에도 충분히 존해할 만한 일이지요...그래서 더 가슴이 아픕니다....
1988년 88꿈나무 학번이었던 저는 참 행복한 몇달이었습니다.
그 시절 노래들..학교 교실..참 선생님이 계셨던 학교
친구들과 교류하고 우정을 나누면서 공부해도 대학에 갈 수 있었던 시절
국수를 나눠먹을 이웃이 존재하고..남일에도 울고 웃어줄 수 있었던 시절
사랑보다 우정을 택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게만 보이지 않던 시절..
성동일/김성균/택이 아빠 최무성/학주 도룡뇽 아빠
보라엄마/치타여사/선우 엄마/조과장님이 되고 싶었던 동룡엄마
다 우리집 일 같고.우리 옆집 사람들 같은 이야기들을 보며
아빠들도 엄마들도 큰 아들도 작은 딸도 울고 웃게 해주었던 멋진 드라마 응팔
우리는 정말 응답할 수 밖에 없었던 고마운 드라마 였지요.
1988년에 저는 영문과 새내기로 덕선처럼 앞머리를 터널처럼 스프레이뿌려 만들기도 하고
눈두덩이에는 보라색 아이샤도우를 바르고 입술에는 분홍이나 오렌지색 립스틱을 바르기도 했어요.
저랑 사귀려고 법대오빠와 체대 오빠가 서로 결투?하기도 했고 ㅋㅋ
제가 사귀고 싶던 선배들은 대자보를 쓰고, 단식투쟁을 하며 민주주의와 통일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연애를 하기에도. 남들 가투에 나가는데 혼자만 살겠다고 공부만 하기에도
이런 저런 눈치가 보이던 시절 80년대 대학이었지요.
우리는 어느새 우리아이들이 대학생이 될 정도의 나이에 도착해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꿈꾸던 미래에 도착해 있는 것일까요?
과연 우리가 투쟁해서 얻어낸 민주주의는 지금 다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굴리던 이 삶의 바퀴를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이어서 굴려주겠지요.
응팔이 끝나고 많이 허전해집니다...
제 청춘은 이제 끝이났고...추억에 빠져 있기엔 현실이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도 그 청춘을 잘 지나와서...여기쯤 와 있어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제가 온전히 저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88년에 이제 응답합니다.
여전히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살 수 있게 해준 80년대에 감사합니다.
그시절의 추억으로 남은 생을 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같은 시대를 어깨동무하듯이 함께 넘어와준 우리친구들...고맙습니다.
아울러 그때 저한테 잘보이려고 제 단짝 친구꺼까지 표를 구해서
88올림픽 농구경기 그 시대의 전설들인 허재 이충희 김현준 최철권 한기범 김유택
그들의 경기를 보게 해준 영문과 과대표 논현동 김씨에게도
그 경기만 보고 안만나준거 정말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응팔은 끝이 나고 여전히 내맘속엔 여전히 정환이가 살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그 시절 노래들에 빠져 있을 거 같습니다.
오늘만은 우리들의 모든 첫사랑들이 어디선가 무사히 잘 살아가기를
그래서 첫사랑은 비록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첫사랑으로 우리는 또 이만큼 성장해 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마음 속으로만 잠깐 하셔야 합니다.
굿바이 첫사랑 굿바이 응답하라 1988
굿바이 정환아 굿바이 응답했다 1988